한 방송사의 전형적인 보도 흐름을 보자. 화면에는 부두에 정박한
컨테이너선과 자동차들이 등장하고, 자막에는 "일본·유럽도 자동차 관세
15% 인하"라는 문구가 흐른다. 이어진 내레이션은 이렇게 말한다:
"국산차는 상대적으로 불리해졌습니다."
곧 도표가 등장한다. 제네시스 G80(현행가 57,100달러)이 한국에서 25% 관세가 붙으면 71,375달러가 되고, 이는 15% 관세를 적용받는 메르세데스-벤츠 E350(7만 1,817달러)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기사의 주장은 "현대차의 저가 이미지 유지가 어렵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전문가 의견이라며 국책연구기관 책임자를 인터뷰해 "관세가 15%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가격 경쟁력에서 열세"라는 멘트를 받는다. 이런 보도를 본 국민들은 트럼프가 강요하는 3,500억 달러를 내지 않으면 나라가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중요한 맥락을 여러 군데 삭제한 덕분이다.
무엇이 빠졌는가 — 보도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항목들
1. 정확한 주체 표기: ‘국산차’가 아니라 ‘현대차’
언론은 반복해서 '국산차'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2025년 현대차의 외국인 지분율은 약 35~43%이고, 현대차의 상당수는 해외에서 생산된 차량이다. 사정이 이런데 '국산차'라는 호칭은 소비자에게 현대차가 한국 경제 전체를 대표한다고 오해하게 만든다. 더구나 우리는 현대차 해외 생산분 중 얼만큼의 비율이 국내에서 판매되는지 여부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데 말이다.
만약 해외 생산분 차량의 국내 판매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라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입하는 게 황당한 '바보 짓'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지금 판도대로면 미국은 한국이 제공한 자본력으로 만든 자동차와 선박 그리고 반도체를 한국에 역수출 할 수 있게 되거나, 한국 브랜드를 부착한 저가품을 전 세계에 뿌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원금을 돌려줄 의무가 없는 투자금이기 때문에 삼성과 현대 공장에서 나온 제품으로 수출이 되면 그만인 거지, 그 수익을 신경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미국 밖으로 나간 달러를 회수하는 게 목적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3,500억 달러 묻지마 대미 투자로 인해 현대 삼성 등의 국내 공장은 고사하게 되는 게 미국 투자의 본질일 수 있다.
2. 단순 가격 비교의 함정
벤츠와 제네시스의 단순 가격 비교는 소비자가 실제로 고려하는 브랜드 가치·품질·A/S·감가율 같은 요소를 배제한다. 관세가 소비자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브랜드 포지셔닝과 시장 전략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 소비자들이 제네시스와 벤츠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이, 제네시스를 저가에 판매할 수 없다는 것에만 집중된 통계 자료는 쓸모 없는 내용이다.
3. 원가 구조와 임금, 배당 등 내부 비용 항목
가격 경쟁력의 큰 부분은 임금·원자재·투자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현대차의 평균 임금은 이미 높은 수준이며(2025년 기준 약 1억 원 수준으로 보도됨), 신입 연봉도 각종 수당을 합하면 5천만 원대에서 1억 원에 근접한다는 보도가 있다. 그렇다고 노조 임금만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의 배당, 투자 우선순위, R&D 지출 등도 함께 공개돼야 한다. 만약 현대차 신입 사원 연봉 1억 원을 유지시켜야 하는 게 국책 과제라면 3,500달러 대미 투자는 필요하다는 뜻이다.
4. 국부(國富)와 실제 국내 기여도
언론은 종종 수출액을 곧바로 '국부 창출'로 연결하지만, 실제로는 배당·이자·수익의 상당 부분이 해외 투자자에게 귀속된다. 또한 해외 생산 비중이 높을수록 국내 고용·부가가치 기여도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수출 = 국부'라는 단순한 등식은 이제 성립하지 않는다. 3,500억 달러를 투자해서 얻은 현대차 수익의 50%가 외국에 넘어가는 것이라면, 역시 바보 투자가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래도 협력업체 등의 국내 공장을 일부 돌릴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그 대가로 3,500억 달러는 지나치지 않을까?
그런 식의 계산이라면, 미국에 주는 주둔비를 북한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미군을 내보내는 게 월등한 국익이다. 왜 이런 계산은 하지 않는가
말이다.
5. 정치·외교적 맥락의 배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통상적·외교적 협상 수단이다. 이 점을 분리해 보도하면 관세가 마치 순수한 경제 문제인 양 왜곡될 수 있다. 언론은 관세 조치의 국제정치적 배경과 한·미 협상의 맥락을 함께 전달해야 한다. 또, 현재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의 성격이 한국 대표 산업의 중복 투자로 인한 과잉생산으로 이어져, 국내 산업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보도해야 한다.
대안적 기사(언론이 보여줘야 할 구성)
진실에 가까운 보도는 다음 항목을 포함해야 한다. 아래는 보도의 틀(순서) 예시다.
- 정확한 제목: "현대차의 가격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 주체를 명확히 한다.
- 글로벌 지배구조 개요: 외국인 지분율, 해외 생산 비중, 주요 해외 공장 위치와 규모 표기.
- 원가·수익 구조 도표: 차량 한 대당 매출, 원가, 순이익, 인건비·배당·세금·R&D 비용의 비중 표기.
- 임금 구조 공개: 직군별·직급별 평균 연봉, 신입 연봉, 성과급·복지비 항목.
- 국내 기여도 분석: 부품 공급망(협력사)·고용·지역경제 기여도 계산.
- 정치·외교 맥락: 관세 협상의 국제 정치적 배경과 한국의 협상력 분석.
- 대안과 질문: 현대차의 자구책(임금·배당·가격 책정 조정 가능성), 정부의 보조 기준, 소비자 보호 방안 등.
최종 진단
관세 논쟁을 다루는 언론의 현재 태도는 문제의 핵심을 가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압박 논리를 재생산하는 데 그친다. 진짜 필요한 것은 단편적 가격 비교가 아니다. 이러한 가격 비교 단면 보도는 기사 생산자가 미국인으로서 트럼프에 동조하는 성향을 가진 이였을 때다. 지금처럼 현대차를 예로 들 것이라면, 현대차 내부의 원가·임금·배당·해외 생산 비중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관세 완화 여부와 보조금 정당성을 따져야 한다.
지금의 보도 행태는 '현대차 노조로부터 로비를 받아 기사를 만드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을 부를 정도로 편향되어 있다. 언론은 스스로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고, 공정하고 검증 가능한 보도를 해야 한다. 또한 3,500억 달러 묻지마 미국 투자가 국내 산업의 붕괴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보도의 기본이다.
그들이 한국인의 입장에서 트럼프 관세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말이다.